학창 시절에는 시험기간에 해리포터 소설 읽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일반 수업시간에는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던 해리포터가 시험기간에는 어찌나 눈에 잘 띄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나름 즐거운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때 공부 좀 할 걸". 학창 시절에 공부를 등한시했던 사람 중에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따로 목표가 있어서 다른 것에 집중했던 사람은 제외하고)
나는 시험기간에 해리포터 읽는게 참 좋았다. 왜냐하면 그게 너무 편했었다. 해리포터 책을 펼치면 교과서 문제 하나 못 풀어서 낑낑대는 내가 아니라 마법학교 호그와트에서 인정받는 인기 만점에 특별한 존재인 해리가 될 수 있었다. 포기하니까 편했고 때로는 한 발 더 나가서 즐겁기까지 했다. 이런 내가 진지하게 불편함을 느낀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이제 당장 내년에 수능을 치러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공부가 너무 어려웠다. 책상에 앉아있는 것부터가 엄청 불편했다. 이놈의 허리는 왜 이리 아픈 건지 다른 애들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앉아있는 건지 등 별 생각이 다 들고 특히 자괴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결국 나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고통이 가득한 힘든 시간이 됐고, 내 나이 30이 될 때까지 시험을 포기하는 습관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시험기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해리포터를 보는게 편한 걸까? 불편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엄청 불편하다. 해야 될 것을 안 하고 책임지기를 포기했을 때 결국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고 고통의 양과 강도 또한 복리로 축적됐다. 이런 상황은 결국 내가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삶을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이 삶을 위한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삶을 위한 책임이 뭘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말한다. '내가 피하면 안되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삶을 위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을 거친 나는 학생으로서 공부라는 과업을 피하면 안 됐다. 왜냐하면 공부가 학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고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회피했고, 결국 의무교육 과정이 끝났을 때, 공부라는 일을 피한 나는 학습능력이 낮은 사람이 됐다. 실력이 낮으니 공부라는 책임을 다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같은 일을 해도 더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막상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고스란히 고통으로 치환됐다. 이런 예시는 매우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시다.
그 외에도 삶을 위한 책임의 종류는 많다. 누군가의 자식이라면(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겠지만)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야할 책임이 있다. 뭔가를 가르쳐야 되는 선생님이라면 학생을 올바른 지식과 태도로 교육하고 학생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돼야 할 책임이 있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다면 그 가족을 돌보고 위로해줘야 할 책임이 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의 시민이라면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다 삶을 위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하는 걸까?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감당 할 수 없는 큰 고통이 삶을 망쳐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슨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아무리 일상이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고통이라는 것은 실존적인 진리다.
그렇지만 또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고통을 받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고통을 받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남들 다 겪을만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거대한 고통을 겪은 사람의 예로 '수용소 군도'의 작가 솔제니친을 들 수 있다. 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로 강제 노역 수용소에 수감되어 사람이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고 또 그 안에서 암까지 걸려 투병해야 했다. 그리고 아프다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는가? 그가 과연 그만한 죄를 지었는지도 의문이다. 고통은 선택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큰 고통을 연속으로 겪고, 누군가는 작은 고통 한 번만 겪기도 한다. 왜냐하면 삶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삶이 불평등한 이유가 뭘까? 피터슨 교수님은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련된 비유와 사례를 들어주며 알려준다. 대표적인 비유가 혼돈과 질서다. 세상은 혼돈이라는 스케치북 위에 질서가 그려진 모양새로 존재한다. 혼돈과 질서는 어디에서든 공존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강남 밤거리라는 장소에서 혼돈은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모를 강남 클럽 앞이고, 질서는 강남경찰서의 경찰관들이다. 이 삶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삶을 뒤흔드는 고난(혼돈)은 당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의 수준에 맞춰 고난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어린아이들 중 불치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억울하게 처벌받는 선량한 시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럴수록 삶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중요하다. 어떤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그저 삶에 책임을 다하면 된다. 그럼 어떤 형태로든 삶은 나아진다. 솔제니친은 억울하게 수용소에서 고통을 당하고 암에 걸려서 나왔지만,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기로 선택했고 그로 인해 지옥과도 같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삶을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
정보 과잉의 시대. 너도 나도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고 자기만의 방법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 이야기의 대부분은 세상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고통에 대해 눈을 피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너무 무겁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이런 불편함을 더 직시하고, 불편한 진실에 눈을 마주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담담히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알려줬다. 12가지 법칙의 범위는 광범위 하다. 나의 자신감에서부터, 길가에서 마주치는 고양이까지.
솔직한 심정으로 12가지 법칙을 한번에 다 지키려고 하는 건 만용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법칙 3 -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를 먼저 실천해보고 싶다. 선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나 또한 선하고 건강하다고 증명해보도록 노력하겠다.
책의 내용 자체가 깊이 있고, 광범위 하고, 학술적으로 쓰여있어서 현재 내가 가진 내공으로는 책을 읽는데 시간을 엄청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서평도 책의 일부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그친 게 아쉽다. 솔직히 12가지 법칙을 따르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보다 책의 구절들 중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꼭 재독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아쉽지만 이번 서평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에 재독 후 새로운 서평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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