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웹개발자의 디자인에 대한 2가지 오해
4년 남짓 개발자로 현업에서 일해 오면서 때로는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고, 때로는 웹페이지를 프론트엔드까지 만들기도 하면서 스스로가 정말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재능이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었다. 내가 만들면 뭘 해도 예쁘지가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만든 제품이 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고 망하는 거 아닐까 자책한 적도 있었다.
자신감도 없고, 결과물도 없었던 나는 점차 백엔드 위주의 웹 개발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좋은 기회를 통해 디자인에 대한 책 '디자인과 인간 심리'를 읽을 수가 있었고, 내가 구현했던 제품들의 문제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을 그저 읽고 날려버리지 않고, 내 실력에 보태보기 위해 내가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했던 두 가지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서평을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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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1: 디자인은 제품을 예쁘게 꾸미는 것에 대한 분야다.
어떤 게 더 버튼처럼 보이나?
대부분은 오른쪽이 더 버튼처럼 보인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부끄럽습니다..)
내가 개발자로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 구현하고 있던 안드로이드 앱에 제품 특성상 버튼 UI가 여기저기에 사용됐다. 그리고 나는 버튼에 우리 서비스의 테마 색(주황색)을 적용하고, 색깔 예쁘고 텍스트랑 조화도 잘되네 이러면서 만족하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앱을 출시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버튼이 버튼인 줄도 모르고 클릭도 안 했다고 한다..ㅠㅠ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그때 당시에는 그저 서비스 아이디어가 구렸다고 퉁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디자인과 인간 심리'를 읽으며 다시 한번 이 실수를 돌이켜 보게 됐다.
자, 사진을 보며 생각을 해보자. 왼쪽 문은 어떻게 열어야 할까? 그리고 오른쪽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까?
왼쪽 문은 손잡이를 당기거나 밀면 된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오른쪽 문은 어떻게 열어야 될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열어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디자인이 단순히 예쁘다는 기준만 갖고 있다면 어떤 문이 더 좋은 디자인의 제품일지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디자인과 인간 심리'의 저자 노먼은 왼쪽 문의 디자인이 훨씬 좋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 결과는 저자가 소개한 "사람이 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 제품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느냐"와 크게 연관되어 있다. 사람이 제품을 인지하게 됐을 때 세 개 수준의 처리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본능적 수준', '행동적 수준', '숙고적 수준'.
- 본능적 수준: 특별한 의식의 자각이나 제어 없이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 흔히 첫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된다고 하는 것도 이 본능적 수준의 처리에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 행동적 수준: 학습된 행동이 인지한 것에 대해 반응하는 것. 운전을 처음 하는 사람과 숙련자의 차선 변경을 생각하면 된다. 만약 인지된 것에 걸맞은 기존 학습된 행동이 없다면 이 단계는 건너뛰게 된다.
- 숙고적 수준: 천천히 되돌아서 생각해보는 단계. 가장 느리지만 가장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 세 가지 처리 수준을 도구 삼아 '두 개의 문'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살펴보자.
- 본능적 수준: 우리는 둘 중 어떤 문이든 본능적으로 이 물건이 '문'이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문이 예쁘진 안 예쁜지, 무거워 보이는지 가벼워 보이는지 등도 순식간에 판단할 수 있다.
- 행동적 수준: 왼쪽 문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되겠다 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자주 경험한 문의 특성이기도 하다. 반면에 오른쪽 문을 보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 머리에 "!?"를 띄우게 될 것이다.
- 숙고적 수준: 왼쪽 문은 이 단계를 건너뛴다. 숙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 문은 이제 숙고의 시간에 들어섰다. "이거 밀어야 하나? 일단 당기는 손잡이가 안 보이는데.."
전문가들은 의식적 추리의 필요성을 최소화한다. - p 135 -
일상에서의 마주하는 많은 물건이 이런 식으로 시간 or 에너지를 낭비하게 한다면, 꽤나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왼쪽 문의 디자인이 훨씬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처리 단계를 내가 만들었던 '두 가지 버튼'에 대입해보면, 내가 만들었던 평평한 왼쪽 버튼은 사용자들에게 '버튼'이라는 사실이 본능적, 행동적 수준에서 인지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에 눌리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안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꼭 버튼은 버튼답게 만들자고 다짐해본다.
최근에 읽은 책 '인스파이어드'에서 소개된 내용에서도 최고 수준의 IT제품을 만들어내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잘 나가고 있는 많은 기업들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세 가지 처리 수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제품팀'의 주요 인물인 디자이너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처리 수준을 골고루 고려한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근거들이 '디자인이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인스파이어드 서평 링크)
오해 2: 제품이 정상 작동하지 않으면 오류 메시지를 보여주면 된다.
위 메시지를 봤을 때 반응
- 개발자들의 생각 - "오류 원인을 확실히 알려주네. 나도 저렇게 해야지"
- 일반 사용자들의 생각 - "아 짜증 나, 안되네. 평점 1점 확정"
물론 모두가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위와 같이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을 확실히 알면 문제를 해결하기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게 시스템의 에러인지, 사용자가 실수를 한 것인지 확실히 알려줄수록 좋지 않은가?
만약 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개발자를 해보는 게 어떨까..? ㅎㅎ 농담이다.
하지만 책 '디자인과 인간 심리'에서는 오류 메시지를 제거하라고 충고한다.
전자 혹은 컴퓨터 시스템에서 모든 오류 메세지를 제거하라. 그 대신 도움말과 안내를 제공하라. - p 94 -
도대체 왜 오류 메세지를 제거하라고 할까?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제품을 떠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스스로를 '기계치' 등의 별명으로 부르며, 최신 전자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제품에서 자꾸 오류 메시지만을 보여준다면, 우리가 바로 이 사람들을 '기계치'로 만든 범인 일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잠시 초등학교 시절(혹은 국민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자 지금은 즐거운 체육시간이다. 이제 나가서 다 같이 피구를 해야 할 시간이다. 어떤 아이들은 굉장히 공도 잘 던지고, 상대가 던진 공도 잘 받는다. 근데 나는 그렇게 못하고 쉽게 아웃되고 만다. 그리고 어째선지 내가 던진 공은 비실비실 날아가거나 땅에만 틀어박힌다. 그리고 우리는 슬슬 이렇게 생각한다. "아, 체육 하기 싫다. 나는 몸치인가 봐"
바로 위와 같은 원리로 '기계치'가 된다. 남들은 쉽게 다루는 전자 기계를 나는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 무기력함을 학습하게 하고, 그 결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계치'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전자 기계는 사용법이 어려운 편이고, 사용설명서를 읽으며 반복 학습하지 않으면 기억하기도 어렵게 구조화되어있다. 이는 안 좋은 디자인의 전형적인 예이다.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직관적으로 제품을 이용할수록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오류 메시지'는 하나의 장벽이 될 뿐이다. 뭔가 동작을 실패했을 때, 오류 메세지 대신 '도움말, 혹은 안내'를 제공하면 어떨까? 사용자는 전자제품 이용에 '실패 없이' 성공하게 된다. 이는 긍정적 선순환이고,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에서 오류 메시지를 제거해야 한다. 대신 도움말을 쓰자.
책을 읽으며 많이 반성했던 점이 있었다.
"도대체 나는 그때 왜 이렇게 생각 없이 개발했던 걸까?"
조금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고칠 수 있었던 치명적 디자인 실수들을 돌이켜보며 나를 반성하고 또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었다.